테스데이가 버스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
* 2부 이후 LB7주종이 생존하여 미국에서 거주 중인 if
* 데이비트와 테스카틀리포카는 노움 칼데아의 미국 지부 요원으로서 일하고 있다는 설정
* 암튼 얼렁뚱땅인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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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일상의 사소한 일로도 자신의 운세를 점치곤 한다. 예를 들어 아침 식사를 위해 깨뜨린 달걀 하나에서 노른자가 두 개 튀어나왔을 때 대다수 사람은 그날 하루가 잘 풀릴 것이라 예상한다. 데이비트는 기본적으로 그러한 류의 미신 따위는 믿지 않는다. 명확한 근거 없이 내려지는 결론은 한정된 정보로만 결괏값을 도출해야 하는 그의 특성상 이롭지 못한 논리 구조였다. 일정 확률로 발생할 수 있는 사건, 단지 그뿐이었다. 그런 희박한 확률로 마주한 쌍란이 프라이팬 위에서 익어가는 것을 보며 그는 음식을 담을 그릇을 준비했다. 이때 프라이팬에 뚜껑을 덮으면 적절하게 반숙으로 익은 써니 사이드 업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는 오히려 날 것에 가까운 상태인 채로 접시에 담았다. 오로지 동거인의 입맛에 맞춘 레시피였다.
테스카틀리포카는 조리 과정을 많이 거치지 않은 음식을 선호한다. 레스토랑에서 주문하는 스테이크의 굽기는 언제나 레어이며 위스키는 온더락보다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것을 즐긴다.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날 것이라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닌지, 한번은 일본식 술집에서 주문한 사시미를 한 입만 먹고 손도 대지 않으며 가라아게를 추가로 주문한 그였다. 심지어는 그는 한때 좋아하던 음식이더라도 하루만 지나면 싫증을 내며 거들떠보지도 않는 변덕스러운 입맛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런 미식가에게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으나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현재 데이비트는 테스카틀리포카를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요리사가 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찬사의 말을 건네면 데이비트는 “그렇군”이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조금 피곤한 듯한 표정을 짓지만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범위의 일이다.
오늘 아침은 잘 구워진 바게트에 과카몰리를 바른 오픈 샌드위치다. 제일 위에는 완벽한 원 모양의 노른자가 올라간 달걀프라이가 놓여있다. 여름날 중천에 뜬 태양을 닮은 모습이다. 이 집에 사는 검은 태양이 거실에 모습을 보인 것은 식탁이 거의 다 차려졌을 무렵이었다. 고양이라도 되는 것처럼 크게 하품을 하며 등장한 그는 시야에 들어온 식탁을 둘러보더니 만족스러운 웃음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가지런히 놓인 식기 중에서 가장 먼저 들어 올려진 포크는 목표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힌다. 갓 사냥한 짐승의 심장에 칼을 꽂듯이 노른자 중앙에 박힌 포크 주위로 노란 액체가 흘러넘쳤다. 노랗게 물드는 빵과 접시를 보며 데이비트는 이른 아침부터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확률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동안 데이비트에게 확률이란 수치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운이 좋지 않다, 같은 말을 그는 확률을 과대해석한 고정관념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그는 타고 나기를 운이 나쁜 사람이 어쩌면 실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주말 저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움 칼데아로부터 들어왔던 의뢰를 일찍 끝마치고 거실에서 여유롭게 영화를 관람하려던 데이비트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외출 준비를 하는 테스카틀리포카 덕분에 동작을 모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카지노에 다녀오겠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집을 나서는 그 손에 들린 것은 틀림없이 얼마 전에 데이비트가 새로 발급받은 신용카드였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그가 다음에 집 문턱을 넘었을 때는 어떤 이유에서든 다음주 식비가 몽땅 사라진 뒤인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런 이유로 테스카틀리포카를 차마 혼자 보낼 수 없었던 데이비트는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동행으로 따라나서고 말았다.
그렇게 도착한 카지노에서, 마침내 데이비트는 위대하신 전능신께서 어떻게 하여 하루아침에 예산을 홀라당 날려 먹곤 하는지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룰렛이 한 번 돌아갈 때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거액을 거는 테스카틀리포카를 데이비트는 말릴 수도 없었다. 소액 배팅이라는 것은 테스카틀리포카의 사전에 등재된 적도 없다. 싸움에 임할 때는 가진 모든 자원을 쏟아붓는다. 그건 도박이라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것도 시련이라는 건가.” 혼자 중얼거린 데이비트가 보다 못해 가까이에 있던 테이블에서 블랙잭을 시작하고 재산을 되찾기까지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테스카틀리포카는 그 모습을 용하다는 듯이 지켜보더니 지치지도 않고 슬롯머신으로 타겟을 돌렸지만 역시나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만일 쌍란을 발견하는 것을 카지노의 상황에 비유한다면 그야말로 잭팟이라고 해도 되겠지.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오늘 아침 식탁은 777 슬롯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마음에 든 대상에게 무차별적으로 시련을 내리는 테스카틀리포카의 특성상 불운에 휘말리기 좋다는 사실은 이문대에서 질리도록 경험한 뒤였다. 하지만 지금의 테스카틀리포카는 평범한 ‘인간’에 가까운 상태다. 서번트로서의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주의 백업도 없으며 신비의 힘이 지극히 약한 현대에서 신의 권능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그의 존재가 ‘운’이라는 것에 끼치는 영향이 이토록 크단 말인가.
식사하는 동안 귀로는 테스카틀리포카가 음식을 품평하는 것을 들으며, 데이비트의 머릿속에서는 확률에 대한 사고실험이 이루어진다. 따지자면 카지노는 그다지 이상적인 확률 실험이 되지 못한다. 금전적인 요소가 포함된 이상, 이득을 보려는 누군가의 의사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테스카틀리포카의 불운이 온전히 그 자신의 영향만으로 인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개인의 의사결정이 확률에 끼치는 영향은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과학계는 사고실험을 위해 많은 악마를 탄생시켰다. 눈앞의 신 또한 때로는 악마라고까지 불리며 확률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시합에서는 공정함을 중시하는 위인이다. 실험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완전히 통제된 조건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그들이 위치한 곳은 피니스 칼데아가 아닌 미국 네바다주의 평화로운 거주 구역이며 당연히 시뮬레이터를 실행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런 민간 지대에서 할 수 있는 실험은 무엇이 있을까. 그리하여 데이비트 젬 보이드는 별것 아닌 게임을 한 가지 하기로 결정했다.
“외출이다, 테스카틀리포카.”
식사를 데이비트가 준비한 대신 설거지를 맡은 테스카틀리포카가 정리를 마치고 뒤를 돌자마자 들은 것은 그런 짧은 한마디였다. 이미 나갈 준비를 마친 데이비트는 창문과 전자제품의 전원 등을 꼼꼼히 확인하고 있었다. 어디에, 무슨 목적으로 가는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만 테스카틀리포카는 기꺼이 그를 따라나섰다. 그와 동행하는 길에는 언제나 유쾌한 사건이 있었으니까. 선글라스와 담뱃갑. 테스카틀리포카가 챙긴 것은 딱 그 정도였다.
그들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지 15분 정도 지났을 무렵, 그들은 다섯 번째로 정류장에 들어서는 버스에 올라탔다. 아무 말 없이 버스에 오르는 데이비트를 따라 버스에 탄 테스카틀리포카는 버스가 사거리를 지나 도심 외곽을 향할 즈음에서야 목적지를 물었다.
“없다.”
“뭐?”
“딱히 정해둔 목적지는 없어. 우리는 지금 되는 대로 길을 나서는 것뿐이야.”
최소한 지금까지 테스카틀리포카가 보아온 데이비트는 목적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목적지’가 없을 수는 있지만 ‘목적’은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목적지’ 없는 길을 나서는 ‘목적’은 무엇인가, 테스카틀리포카는 그렇게 질문을 바꿨다.
“한 가지 실험… 아니, 놀이에 가깝다고 하는 게 좋을 것 같군. 우리는 일종의 주사위 놀이를 하는 거야. 운을 시험해보는 거지.”
지금은 새해도 아니었을뿐더러 운세를 점칠 만한 중요한 일정을 앞둔 시기도 아니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이런 소리를 하는 거람. 뜬금없이 운 타령을 하는 예전 마스터를 보며 테스카틀리포카는 최근에 있었던 주요 사건을 하나씩 떠올린다. 이 남자가 다짜고짜 행동에 나서는 일은 언제나 있는 일이지만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다. 그렇게 하루씩 되새겨가던 테스카틀리포카는 문제의 주말을 생각해낸다.
“너 말야, 혹시 주말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거냐?”
“굳이 말하지 않으려 했다만 먼저 그 얘기를 꺼낸다면 부정할 수 없겠는걸.”
“정말이지, 성실한 건 좋다만 그런 건 미리 말하라고. 요컨대 내 운을 시험하겠다는 거잖아?”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우선 말해두자면 난 너의 운이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어쨌든 넌 내가 불러낸 최고의 파트너니까. 만일 정말 너의 운이 나빴다면 나는 그 이문대에서 임무를 끝까지 완수하는 것도 힘들었을 테지.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이건 너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한 실험인 거야. 테스카틀리포카라는 신은 불운의 상징이 아니라는 증명이지.”
감히 신의 운을 시험하겠다고 하는 청년에게 장본인인 신께서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드물게 듣는 솔직한 칭찬이 어색하게 느껴진 것이리라. 팔꿈치를 창턱에 대고 턱을 괸 채로 잠시 바깥을 내다보던 테스카틀리포카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이대로 종점까지 갈 셈이냐?”
“아니, 안 그래도 곧 있으면 이 버스에서는 내려야 해. 이번엔 처음이니까 내가 임의로 기준을 정한 상태야. 참고로 조금 전에는 버스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승합마차에서 착안하여 5번째로 도착한 버스를 타서 8번째 정류장에서 내릴 예정이다. 1662년의 파리에서는 5개의 노선으로 구성된 8인승 마차가 지금의 버스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하지. 다음엔 몇 번째로 도착하는 버스를 타면 좋을 것 같나?”
말인즉슨, 무작위로 버스를 타서 다시 출발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실험이라는 것이다.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여행인데 두 손에는 짐 하나 없이 집을 나선 배짱에 기어이 테스카틀리포카는 웃음을 터뜨렸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막무가내인 남자였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태양이 중천에 떴을 무렵 일시 휴전에 이른다. “문제가 생겼다.” 정오가 한참 지난 시각에 버스의 종점 정류장에서 내린 뒤 심각한 표정을 하며 데이비트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 근방에는 식당이 없는 모양이다.” 표정에 비하면 너무나 맥빠지는 발언에 테스카틀리포카는 데이비트가 얼마나 대책 없이 계획을 진행했는지 실감했다. 하지만 이건 이것 나름대로 평범한 ‘인간’이 할 법한 짓이라는 점을 신은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며칠간 공복으로 노숙을 해도 개의치 않을 둘이었지만 기약 없는 여행이다. 초장부터 체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그런 결론을 내리고 그들은 황량한 벌판을 걸어 나서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던 두 사람이 외딴곳에 있는 작은 오두막을 찾아 신세를 지게 된 것은 그로부터 2시간 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