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헤매는 아이의 손을 잡고 이끈, 그 너머에는’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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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점점 감각이 없어졌다. 의무적으로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내디디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발밑을 내려다보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여전히 눈은 그칠 생각 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차라리 눈이 무거웠더라면, 그 무게에 짓눌릴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아사히나는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눈은 소리 없이 쌓이며 그 두께를 늘려갔다. 주변은 어디를 둘러봐도 새하얀 눈만 있을 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사히나가 손을 뻗자 작은 눈송이가 손바닥에 닿으며 녹아 사라졌다. 차가웠다. 가슴이 갑갑해져 오는 느낌에 숨을 내쉬자 하얀 입김이 만들어졌다. 뒤이어 들이마신 숨은 손에서 녹아내린 눈보다도 차가웠다.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감각에 아사히나는 걸음을 멈췄다. 더는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했건만 가슴 속 어딘가에서 시작되는 한기에 견딜 수 없었다. 이대로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얼어붙어 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오히려 잘됐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길을 걷는 것도 이제 질렸다. 그렇게 아사히나는 눈을 감고 모든 것이 가라앉는 느낌에 몸을 맡겼다.
“……마후유…….!”
눈을 감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몇 초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며칠이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어찌 되었든 아사히나는 자신이 아직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 누군가는 아사히나를 향해 달려오다 넘어졌는지 눈이 움푹 파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으으…… 마후유, 마후유……!”
몸을 일으켜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보자 눈처럼 녹아내릴 듯이 하얀 사람이 있었다. 온통 새하얀 가운데 푸른 두 눈만이 이쪽을 향했다. 그 푸른색은 아사히나를 발견하곤 안심하는 색으로 물들어갔다.
“다행이다, 늦지 않아서.”
작은 체구로 눈을 헤쳐 겨우 아사히나에게 닿은 하얀 소녀는 차갑게 얼어가는 아사히나의 손을 잡아 올렸다. 손을 붙잡은 두 손은 기대만큼 따뜻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사히나는 어쩐지 그 손이 따뜻하다고 느꼈다.
“모두 기다리고 있어. 돌아가자.”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살며시 웃어 보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 번이고 넘어진 것인지 옷은 눈과 흙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그 미소만큼은 눈부시게 빛났다. 이리하여 요이사키 카나데는, 또 한 차례 아사히나 마후유를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