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믈렛과 기념일의 상관관계

테스카틀리포카가 오믈렛을 만들어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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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카틀리포카는 미식가다. 그것도 아주 까탈스러운 입맛의 미식가다. 그의 취향에 맞출 수 있는 식당은 손에 꼽을 수 있으며, 그마저도 하필 운수가 좋지 않아 재료의 질이 떨어지는 날 테스카틀리포카가 식당에 방문하기라도 했다간 그 식당도 예외 없이 리스트에서 지워지는 것이 일상다반사다. 물론 그는 섬세한 취향과 자비로운 마음을 동시에 가졌기 때문에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 하여 진상을 피우는 등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한 번 기준에서 어긋난 식당은 다시 찾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게 몇 차례에 걸친 선별 끝에 살아남은 식당은 사실상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그런 테스카틀리포카의 취향을 완벽하게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다행히도 딱 한 명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그의 동거인이자 특별히 요리를 전문으로 하지 않는 평범한 청년인 데이비트 젬 보이드다. 가히 놀랍게도 그가 만든 음식에 대해서는 테스카틀리포카가 불평을 늘어놓기는커녕 추가 주문마저 할 지경이니 말 다 한 것이다. 누군가 데이비트에게 비법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는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냥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 이유로 안타깝게도 데이비트를 제외한 사람 중에서 테스카틀리포카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 새로 태어나지 못한 채였다. 덕분에 테스카틀리포카가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지 못하여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게 되는 날, 요리를 하는 것은 언제나 데이비트의 몫이었다. 그들의 집 부엌에 서는 사람이 데이비트가 아닌 날은, 매우 드문 것이다.

 

“테스카틀리포카, 오믈렛이 먹고 싶다.”

“아? 그런 건 네가 해먹으면 되잖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테스카틀리포카는 아주 까탈스러운 사람이다. 그것은 비단 음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자비심을 겸비했다곤 하지만 그가 아니라고 판단한 일은 정말 아닌 것이다. 판단이 뒤집히는 것보다 천지가 뒤집히는 것이 빠르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마찬가지로 단 한 명, 테스카틀리포카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며 이는 앞서 언급한 그의 귀염성 없는 동거인되시겠다.

 

거실에서 느긋하게 TV나 보고 있던 테스카틀리포카는 식탁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좀 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책장을 넘기는 데이비트가 앉아있었다. 데이비트는 테스카틀리포카의 말을 못 들은 것인지 무시한 것인지(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고개를 꼿꼿이 들더니 테스카틀리포카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얘기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테스카틀리포카는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알았다고. 만들어줄게, 만들어준다고.”

 

눈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 것처럼 뚫어져라 향해오는 시선에서 눈을 피하며 테스카틀리포카는 기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항복, K.O다.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거실을 가로질러 부엌에 도착한 테스카틀리포카는 우선 현상황을 확인했다. 데이비트는 오믈렛이 먹고 싶다고 했다. 언제 갑자기 어떤 음식을 요구할지 모르는 테스카틀리포카로 인해 그들의 집 냉장고에는 항상 여분의 재료가 준비되어 있다. 역시나, 활짝 열어젖힌 냉장고 안에는 1인분의 오믈렛을 만들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재료가 있었다. 만일 재료가 부족하여 장까지 직접 봐와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면 테스카틀리포카는 이 일을 오래도록 우려먹을 수 있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본인의 까탈스러움으로 인해 그럴 기회는 없어지고 말았다. 계란은 3개. 채소는 파프리카, 양파. 슬라이스 햄은 없으므로 대신 베이컨을 사용하도록 한다. 없어도 괜찮았겠지만 치즈가 있는 것을 발견한 이상 이것도 채용. 데이비트는 소스를 즐기지 않는 편이므로 케찹은 생략한다.

 

테스카틀리포카가 준비를 하는 동안, 처음엔 그 움직임을 관찰하던 데이비트는 이내 읽던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매정한 녀석이구만, 하고 테스카틀리포카는 새삼 생각했다. 괜찮은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 안심했기 때문에 나오는 무관심일 테지만, 내심 옆에서 간섭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아무렴 어떠랴, 하루 이틀 있는 일도 아니다. 이미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간 데이비트를 뒤로 하고, 테스카틀리포카는 주어진 임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오믈렛이 완성되는 동안 집안을 채운 소리는 프라이팬에 둘러진 기름 소리와 테스카틀리포카의 입에서 나오는 휘파람 소리, 그리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뿐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오믈렛이 담긴 접시를 식탁에 내려놓았을 때야 비로소 데이비트는 책을 덮었다. 반듯하게 반으로 접힌 계란, 샐러드와 그 위에 가지런히 놓인 반으로 잘린 방울토마토까지 시선이 머문 뒤 데이비트는 접시와 함께 놓인 포크와 나이프에 손을 올렸다.

 

“너는 먹지 않는 건가?”

“다이어트다, 다이어트. 됐으니까 먹기나 해라.”

 

한 접시뿐인 오믈렛을 보며 데이비트는 의문을 표했지만 돌아온 것은 성의라곤 없는 거짓말이었다. 군살이라는 게 붙어본 역사가 없을 듯한 테스카틀리포카가 다이어트라니. 데이비트는 나누어 먹어도 괜찮다고 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괜한 소리를 했다간 시끄워질 것이라는 예감에 잠자코 매끈한 계란 위에 칼을 댔다. 벌어진 틈 사이로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고, 함께 올라오는 향은 군침을 돌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데이비트는 첫 한 입을 떴고, 그릇을 남김 없이 비울 때까지 놀라울 정도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만들어줬던 것하고는 맛이 다르군.”

“뭐?”

 

테스카틀리포카는 그의 섬세한 입맛에 걸맞게 준수한 요리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의외로 그는 마음마저 섬세한 편이다. 선글라스에 표정이 반쯤 가려진 덕에 티는 나지 않았지만 그는 나름대로 데이비트의 입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긴장과 기대를 동시에 안고 있었다. 그리고 식사를 모두 끝낸 뒤에야 겨우 나온 짧은 감상평에 그는 실없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건 욕인가? 칭찬은 아닌 것 같은데. 상황 파악이 안 되는 테스카틀리포카를 두고 데이비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말 없이 식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식기를 모두 개수대에 밀어 넣고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설거지를 하는 모습은 흡사 사건 현장에서 증거를 인멸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싱크대 정리를 끝내고 식탁까지 한 번 닦아내고 나서야 자리에 다시 앉은 데이비트는 평소와 같은 무뚝뚝한 얼굴로 사업 계획이라도 설명하듯이 말을 이었다.

 

“……우리집에서는 특별한 날에 오믈렛을 만들어 먹었다.”

“잠시만, 그렇다는 건 오늘……”

 

테스카틀리포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데이비트는 답을 내놓았다.

 

“오늘은,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데이비트 젬 보이드는 과묵한 남자다. 대화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테스카틀리포카 같은 수다를 취미생활처럼 즐기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의 과묵함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진가를 발휘하고 만다. 마치 지금 같은, 그의 몇 안 되는 혈육이 그의 곁을 떠난 날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상황처럼.

 

“너 말야…… 그런 거라면 미리 말을 하라고. 알았으면 뭐라도 준비했을 거 아냐.”

“아니, 딱히 뭔가 해주길 원해서 한 말은 아니다만.”

“너는 필요없을지 몰라도 듣는 입장에선 그냥 넘길 수 없는 게 있다고.”

“그런가.”

 

앞으로 참고하도록 하지. 덤덤하게 답을 하는 데이비트를 보며 테스카틀리포카는 아직 갈 길이 멀었음을 느꼈다. 알고 지낸지 열 달만에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생일을 알게 만들었던 이다. 먼저 나서서 챙겨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또 늘어나버리고 말았다. 테스카틀리포카는 한숨을 쉬며 달력에 표시해두어야 할 날을 하루 추가하기로 했다. 테스카틀리포카의 석연치 않은 반응을 납득하지 못하던 데이비트는 문득 중요한 것을 잊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고맙다, 테스카틀리포카. 맛있었어.”

“그러냐.”

 

기다리고 기다리던 호평이 돌아왔지만 이미 불편해진 심기는 그 정도로 나아질 기색이 없었다. 혼자 멋대로 만족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테스카틀리포카는 이번에도 져주는 쪽은 자신이라는 걸 순순히 인정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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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친분의 썰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만 지금은 계정을 지우셔서 안 계시네요.. 여담으로 기념일에 가족들이 오믈렛을 만들어 먹는 이야기는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이라는 애니메이션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잔잔한 로맨스 영화예요.

10-30
yunic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