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예민해진 부모님으로 인해 세카이에 가는 빈도가 부쩍 줄어들어 버린 아사히나였지만, 오늘은 두 분 모두 크리스마스 기념 파티에 초대받아 늦게 귀가한다고 하였다. 덕분에 아사히나는 세카이에서 다 함께 파티하자는 권유를 선뜻 받아들일 수 있었다. 초대에 응했을 때 아사히나가 지은 표정을 보고 니고 멤버들이 모두 흐뭇해했다는 것을 아사히나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것은 사소한 문제였다.
오늘도 여전히 호들갑을 떠는 아키야마와 그런 아키야마를 꾸중하는 시노노메 사이에서 미쿠는 처음 보는 맛의 주스가 마음에 들었는지 두 손으로 컵을 모아쥔 채 빨대를 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린은 고개를 저으며 보고 있었지만 요이사키가 내민 과자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평소와 같은, 소란스럽지만 평화로운 세카이의 모습이었다.
……평소와 같은? 자신이 이 풍경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사실에 아사히나는 주스를 따르던 손을 멈췄다. 언제부터 이 세카이가 이렇게 북적거리게 되었더라. 고작 얼마 전만 해도 세카이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것은 단 하나, 말없이 자신을 달래주던 미쿠뿐. 하지만 당시의 아사히나는 그것을 쓸쓸하다고 여긴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곳만이 아사히나가 온전히 숨 쉴 수 있는 곳이었다.
주스의 표면이 일렁이는 모습을 가만히 보던 아사히나는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선가 메이코를 데려온 아키야마는 그 손에 폭죽을 들려주고 있었다. 메이코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루카는 그게 재밌다는 듯 웃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예전과 같은 고독은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아사히나는, 그것을 편안하게 느꼈다.
옆에서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느낌에 아사히나는 옆을 돌아보았다. 아사히나의 오른편에서는 렌이 우물쭈물하며 아사히나가 든 컵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 참, 그랬지. 렌이 빈 컵을 든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고 그 컵을 받아서 채워주던 아사히나였다. 주스를 채운 컵을 돌려주자 렌은 배시시 웃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알 수 없는 따뜻함에 아사히나는 의문을 느끼며 천만이라는 말을 돌려주었다. 이 또한 평소와 같은 대화였다.
곧 부모님이 돌아오실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아사히나는 멤버들보다 한발 앞서 세카이를 떴다. 뒷정리는 맡기라는 시노노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온 방은 난방이 잘 되어 있어 세카이보다 따뜻했지만, 아사히나는 어쩐지 한기가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노래, 노래가 듣고 싶었다. 노래를 들으면 이 한기가 가라앉을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라면 자고로 캐럴을 틀어 마땅하겠지만, 아사히나는 음악 사이트의 인기 순위 리스트를 여는 대신 나이트코드에 접속했다. 몇 시간 전에 요이사키가 올려준 새로운 데모를 아직 듣지 못했었다. 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들어두어야 했다.
요이사키의 음악은 여전히 슬프면서도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스함이 있었다. 아사히나는 아직 그 느낌을 뭐라 형용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아까와 같은 한기는 느낄 수 없었다. 약 2분 남짓한 짧은 데모곡이 끝나자 방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물론 그 정적도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음을 아사히나는 알게 되었다. 이제 잠들기 전 마무리 공부를 하기 위해 노트북을 닫으려던 아사히나는 데모곡이 아직 끝까지 재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수로 녹음 버튼을 늦게 껐던 것일까. 아사히나는 창을 닫지 않은 채 노래를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내년에도 잘 부탁해.”
가느다랗지만 약하지 않은 목소리. 마지막에 녹음된 것은 짧은 인사말이었다. 5초 남짓한 목소리가 끝나고 데모곡은 비로소 끝이 났다.
“……메리 크리스마스.”
아무도 듣지 못할 그 인사를, 아사히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평소와 같지 않은 인사를,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아직 니고카이토가 나오지 않았을 때 쓴 거라 카이토가 없는 게 아쉽네요. 올해 크리스마스는 카나데 집에서 보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