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전승과의 이단아, 데이비트 젬 보이드를 실제로 만났다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만, 이따금 아주 늦은 밤에 그를 목격했다는 소문이 돌곤 한다.
모두가 잠든 밤, 달도 뜨지 않고 별빛만 하늘에 촘촘히 박힌 날, 시계탑 광장을 찾으면 희박한 확률로 그 한가운데에 우뚝 선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하늘을 보는 모습은 마치 어느 먼 별과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오래전에 사라진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의식처럼 보여 그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언제부턴가 어둠 속에서 빛나는 공허한 눈이 이쪽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비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지도 못한 채 눈을 마주 보고 있으면 어느새 광장은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다는 듯이 텅 비어있고 동쪽 하늘에서는 해가 떠오른다는 이야기다.
02
내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감각을 언어로 설명하자면, 어떤 빛도 닿지 않는 무중력 공간을 부유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야말로 거시공동이다. 아직 직접 우주로 나가본 적은 없지만,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대략 비슷할 것이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오늘도 어디선가 하나의 별이 죽음을 맞이하고 다른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별이 태어난다. 수신자가 정해지지 않은 구조 신호는 망망대해에 빠진 유리병처럼 정처 없이 우주를 떠다니다 나에게 도달한다. 나에게 그 신호가 잡혔을 즈음이면 별은 이미 그 자리에 없고 폭발한 흔적만이 남아있다. 이번에 포착된 것은 백색왜성이었다.
쏟아지는 신호는 내 사정 같은 건 고려해주지 않지만, 정보를 분별해서 기억하는 것에는 원래 익숙했다. 많은 신호 중 내가 실질적으로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얼마 되지 않다는 뜻이다. 이따금 집중을 위해 조용히 할 것을 요청하면 사그라들기도 하는 것이 그들이다. 개중에도 말을 듣지 않는 존재도 있기 마련이지만, 그 정도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른바 백색소음 정도의 존재다. 오히려 약간은 남아 있는 편이 나로서는 편하게 느껴진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나에게 도달하는 수많은 신호 가운데 가장 크게 들리는 구조 신호를 애써 무시하며 발을 내디딘다. 어디서 들리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언제나 무중력 속을 걷고 있는 듯한 나에게 유일하게 작용하는 만유인력. 내 발밑 바로 아래에 존재하는 나의 고향이다.
03
시계탑의 지하에는 설계도로는 확인되지 않는 ‘사각’이 존재한다. 설계도 상에는 분명 건물의 폭이 이만큼이라고 되어있는데, 실제로 내부에서 측정하여 합산한 결과는 그보다 적다, 는 류의 이야기다. 그 부족한 수치만큼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것은 당연하다. 누가, 왜 그곳을 숨기고 있는지는 법정과 내에서도 고위직만이 알고 있지 않을까.
한 번은 어느 용감한 마술사가 내부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지하에 발을 들인 적이 있다. 지하 공간은 강력한 마술 장벽으로 보호되어 있지만, 그 정도 마술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시계탑에 널리고 널렸으며, 위험한 일일수록 도전하고 싶어지는 것이 마술사의 기질이었다. 실제로 그 마술사는 숨겨진 공간이 어딘지 찾아내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출입구 또한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술식을 뚫자마자 그는 의식을 잃었고, 눈을 떴을 땐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 쓰러진 채였다. 그는 한동안 인간의 언어를 잃은 채 횡설수설하는 말만 쏟아내었고, 그 중에서도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지하에서 금발의 청년을 만났다는 것뿐이었다.
후에 마술사가 완전히 회복되었을 때 누군가가 그 청년에 대해 다시 물었지만, 그는 자신이 지하에 내려갔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별거 아닌 이야기 /데이비트